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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기억의 왜곡’에 대한 체험적 글쓰기―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같은 사람일까?

1. 기억은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구성하는 행위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마치 창고처럼 생각한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머릿속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고, 그것을 필요할 때 꺼내보는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어떤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곧잘 알 수 없는 어긋남을 느낀다. 분명히 같은 기억인데, 지금 떠올리는 감정은 그때와 다르고, 말투도 조금 다르며, 사람들의 얼굴은 희미하거나 낯설다. 이 어긋남은 단순한 망각 때문이 아니라, 기억이 처음부터 정적인 보관이 아니라, 매번 재구성되는 ‘현재의 행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후설의 현상학은 기억을 시간성 안에서 끊임없이 재조직되는 의식의 흐름으로 본다. 즉, 내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의식이 과거라는 사건을 다시 의미화하고, 지금의 나에게 맞는 형태로 구성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기억은 감각처럼 정확하지 않고, 언어처럼 안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감정과 현재 상태에 따라 흔들리는 유동적 구조이며, 그 구조 안에서 나는 과거의 나를 오늘의 나로 다시 편집하고 있는 셈이다.

‘기억의 왜곡’에 대한 체험적 글쓰기― 나는 내가 기억하는 나와 같은 사람일까?

2. 왜곡은 오류가 아니라, 현재의 필요에 따라 조정된 진실이다

나는 어떤 기억이 잘못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혼란보다는 당혹감을 느낀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던 장면이 실제로는 다르다고 누군가가 말해주면, 내 안에 있던 '확실한 나'의 일부가 금이 간다. 하지만 현상학적으로 본다면, 기억의 왜곡은 나의 오류가 아니라, 현재의 나가 그 기억을 지금의 정서에 맞게 조정한 것이다. 우리는 감정에 따라 기억의 초점을 바꾸고, 특정 장면을 강조하거나 삭제하며, 말하지 않은 말을 떠올리고, 실재보다 더 극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는 단지 기억력의 문제나 객관성의 부족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것이 애초에 '정확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과 감정의 균형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 필요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버틸 수 있는 방식으로 과거를 묘사한다. 이것은 진실을 덮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내러티브적 회복력이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계속 덧칠되고 변형되며, 결국 현재의 나를 유지하기 위한 무대가 된다.

3. 때로 기억은, 내가 아닌 ‘타인의 목소리’로 말한다

어떤 오래된 기억을 떠올릴 때, 나는 때때로 그것이 정말 ‘내가 느꼈던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 장면은 나의 것이지만, 그 기억을 설명하는 문장은 어디서 많이 본 표현이고, 그 감정의 뉘앙스는 마치 영화 속 인물처럼 과장되어 있다. 이것은 기억이 나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공유된 감정 코드와 언어로 변형되어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증거다. 기억은 철저히 주관적이지만, 그 주관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나는 타인의 말투로 나를 설명하고, 타인의 해석을 통해 내 사건을 회상한다. 이는 내가 의도한 것도, 인식한 것도 아니지만, 타자의 시선은 기억이라는 내면의 장면에 끊임없이 스며든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나는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타자가 나를 보듯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기억 속의 나 역시 이 시선의 각도 안에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조차 어딘가 연기하듯 표현하고, 적절한 감정선을 정리하며, 듣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억을 각색한다. 기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다. 진실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란 감정과 타자의 틀에서 재조립되는 구조물인 것이다.

4. 기억은 나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왜곡된 나로 고정한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한다. 어떤 사람은 “나는 늘 버려졌던 사람이다”라고 기억하며 살아가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언제나 이겨냈던 사람이었다”라고 회상한다. 그 기억은 경험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현재의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싶은가에 대한 해석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억이 그 순간의 나를 고정하고, 새로운 나의 가능성을 억누르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기억은 정체성을 구성하면서도, 동시에 정체성을 구속한다. 과거의 상처, 실패, 수치심은 종종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을 주는 살아 있는 감정의 잔재다. 그 기억을 정확히 떠올리지 못해도, 몸은 반응하고, 마음은 위축된다. 이처럼 기억의 왜곡은 단지 회상의 오류가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존재 구조다. 현상학적으로 말하면, 기억은 ‘있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이 과거를 구성하며 자기 자신을 다시 쓰는 과정이며, 그 과정 안에서 나라는 존재는 항상 과거의 흔적과 지금의 감정 사이에서 다시 생성되고 있다.

5. 최종 정리

기억의 왜곡은 잘못된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감정과 정체성이 과거의 기억을 다시 구성한 흔적이다. 기억은 정확한 복원이 아니라, 의식이 시간을 통과하며 자신을 의미화하는 방식이며, 매번 다른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나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나로서 과거를 다시 쓰고, 그 기억 속에서 오늘의 감정을 구축한다. 기억의 왜곡은 오류가 아니라, 존재가 자기 자신을 유지하고 조정하기 위한 능동적 감정 구조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나를 더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자,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지우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 사람인지를 묻는 일이다. 그래서 기억의 왜곡은 현상학적으로 가장 일상적이며 동시에 가장 깊은 자기 이해의 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