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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책 읽기의 주관적 흐름 탐색― 텍스트와 의식이 만나 구성되는 ‘읽기의 현상’

1.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의식의 구조적 흐름을 따른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텍스트라는 외부 구조와 독자의 내부 구조가 만나는 지향적인 의식의 흐름이다. 에드문트 후설이 말한 ‘모든 의식은 무엇인가를 지향한다’는 명제는 책 읽기 경험에 그대로 적용된다. 독자의 의식은 텍스트의 의미를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문장 하나하나를 ‘지금 여기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다음 문장을 예감하고, 이전 문장의 여운을 기억한다. 이런 흐름은 후설의 시간 의식 개념에서도 드러난다. 지금 읽고 있는 문장은 ‘현재의 인상’이고, 바로 앞 문장은 ‘지나간 여운’, 다음 문장은 ‘미리 구성된 기대’로 의식에 자리하며, 이 세 가지 시간 층이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교차한다. 독자는 정지된 페이지를 따라가면서도, 의미 구성은 정지하지 않고 흘러간다. 이 흐름 속에서 독자는 더 이상 ‘정보를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구성하는 주체로 변화한다. 책 읽기란 바로 그 흐름에 몸을 싣고, 나의 의식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세계와 맞닿아 의미를 만들어내는 체험 그 자체다.

책 읽기의 주관적 흐름 탐색― 텍스트와 의식이 만나 구성되는 ‘읽기의 현상’

2. 몰입은 감각의 경계를 넘어서는 자기 일시적 해체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기 자신을 잊는다. 눈은 페이지를 따라 움직이고 있지만, 자아는 어느 순간 페이지 너머의 세계로 미끄러진다. 이 순간은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아 있는 신체’의 감각적 몰입에 해당한다. 독자는 의식적으로는 지금 방 안에 앉아 책을 읽고 있지만, 지각적으로는 이미 텍스트 속 인물의 감정과 시간 속에 들어가 있다. 책은 독자를 강제로 움직이게 하지 않지만, 문장의 리듬, 문맥의 전개, 의미의 촘촘한 배열을 통해 독자의 지각을 천천히 끌어당긴다. 몰입은 어떤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문장 하나, 문단 하나가 의식의 구조와 맞닿을 때 시작되는 체험의 흐름이다. 특히 문체가 생생하거나, 주제가 독자의 감정과 연결될 때, 몰입은 더욱 깊어진다. 이때 독자는 자신의 감각 구조 중 일부를 ‘꺼내두고’, 새로운 의미망 속으로 스스로를 넘긴다. 즉, 몰입이란 감각적 경계를 일시적으로 지우는 자기 해체이며, 이 해체는 다시 자기 회복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를 갖는다. 몰입 이후 독자는 다시 ‘나’를 회복하지만, 그 ‘나’는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의식의 구조를 가진 존재다.

3. 읽기의 흐름은 언어적 감각을 넘어 정동적 공명으로 확장된다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감정은 단지 텍스트에 묘사된 감정의 모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독자의 기억, 정서, 신체적 감각과 얽혀 구성되는 주관적 정동의 공명이다. 슬픈 장면을 읽을 때 독자는 그저 등장인물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는 상실의 경험, 슬픔의 질감, 눈물이 흐르던 밤의 냄새 같은 감각적 잔상과 연결되어 감정을 구성한다. 이처럼 읽기는 언어가 감각을 건드리고, 감각이 다시 감정을 불러내는 감각-정동의 순환 체계 속에서 작동한다. 책이 감동적일 수 있는 이유는 문장 때문이 아니라, 문장이 나의 감각의 장을 자극하여 기억과 정서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이는 책 읽기가 단순한 정보 전달이나 해석의 과정이 아니라, 감정과 의식이 함께 움직이는 심층적 체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동은 텍스트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몸과 언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며, 그 사건은 독자의 내부에서 구성된 고유하고 비반복적인 체험의 구조다.

4. 책 읽기란 자기 세계를 다시 쓰는 조용한 창작이다

독자는 텍스트를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마다 의미를 구성하고, 해석하고, 삶의 감각 속에 새로 배치한다.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인간’, 즉 독자가 항상 어떤 의미를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과 연결된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책이 고정된 의미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의미는 독자의 의식이 책과 만나는 그 순간, 구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책 읽기는 본질적으로 창조적 행위다. 저자의 의도는 중요하지만, 독자의 경험과 해석 없이는 그 의도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머물 뿐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결국, 나의 세계 안에 새로운 문장 하나를 조용히 써넣는 작업이다.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는 외부의 세계를 경험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다시 정리하고, 의미를 새롭게 구축하는 작업을 함께 수행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내용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문장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이 만들어낸 흐름과 분위기, 감정의 구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서는 경험이며, 읽기의 현상학적 본질을 보여주는 사례다.

5. 최종 정리

책 읽기의 경험은 단순한 텍스트 소비가 아니다. 그것은 의식이 텍스트를 따라 흘러가며 의미를 구성하고, 감정과 기억, 정동과 해석이 얽히는 복합적 현상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자아를 일시적으로 해체하고, 몰입을 통해 새로운 감정적 구조를 경험하며, 다시 나의 세계를 확장한다. 읽기의 흐름은 문장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따라가는 나의 의식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책 읽기는 정보 전달이나 교육적 목적을 넘어, 존재의 감각을 확장하고 내면의 리듬을 조율하는 고유한 체험이다. 현상학은 이처럼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경험을 해체하고 구조화함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결국, 나를 구성하는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방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