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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일상 대화에서의 자의식 구조― 말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형식이다

1. 우리는 대화하며 ‘나’를 드러낸다: 의식은 타자에게로 향한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거나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말속에서 드러내고 구성한다. 후설이 말한 ‘지향성’ 개념에 따르면, 모든 의식은 언제나 어떤 대상을 향해 있고, 그 대상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한다. 대화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지향적 행위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반응하고,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며, 동시에 그 해석 속에 나의 입장을 담아 표현한다. 이 모든 과정은 무의식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의식이 타인을 향해 열리고 있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고도로 섬세한 행위다. 내가 어떤 말을 선택하고, 어떤 감정으로 표현하며, 어떤 주제를 강조하느냐는 모두 ‘지금 이 순간의 나’가 어떤 정체성을 스스로 구성하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끊임없이 생성하고 있다. 따라서 일상 대화는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향한 행위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의식을 세계 안에 위치시키는 자기 구성의 장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 침묵하는지, 유머를 섞는지, 감정을 드러내는지의 모든 결정은 그 순간의 ‘내가 됨’을 표현하는 감각적이고 존재론적인 선택이며, 우리는 이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자의식을 살아낸다.

일상 대화에서의 자의식 구조― 말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형식이다

2. 말은 내 몸에서 나오는 감각이다: 체화된 자의식의 현상

메를로퐁티가 말했듯이, 인간의 의식은 신체라는 매개 없이는 세계와 관계할 수 없다. 말 또한 단순한 논리적 정보가 아니라, 몸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감각적 구조다. 우리는 말할 때 단어를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숨과 근육과 발성과 억양을 통해 ‘살아 있는 자의식’을 외부로 드러낸다. 일상 대화 속의 말은 그래서 항상 신체화된 형태로 존재하며, 감정과 리듬, 표정, 손짓과 함께 복합적인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자의식은 이때 머릿속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라는 실존적 통로를 통해 세계와 연결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대화할 때, 말의 내용은 평범하더라도 그 억양이나 속도,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 등은 ‘지금 내가 어떤 존재로서 너와 관계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 모든 감각은 의식이 ‘나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고, 자의식은 말의 물리적 표현을 통해 현상화된다. 말은 그래서 정보 전달을 넘어선 감각의 흐름이며, 우리는 일상 대화 속에서 단어와 억양, 리듬, 틈과 망설임, 그리고 침묵까지 모두를 동원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일상적인 인사나 간단한 잡담조차도 그 안에는 자기감정의 온도, 자기 인식의 조율, 타자와의 거리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 모든 감각은 ‘말하는 나’라는 자의식의 형태로 현상학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3. 자의식은 타자 속에서 확인된다: 상호주관성과 자아의 반사

후설이 강조한 개념 중 하나는 ‘상호주관성’이다. 나의 의식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타자의 의식과 교차하며 형성된다는 것이다. 일상 대화는 바로 이 상호주관성이 살아 움직이는 대표적인 장이다. 우리는 말할 때 타자의 반응을 예상하고, 그 반응 속에서 자신의 말을 조정하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강조하거나 농담을 섞기도 한다. 이 모든 행위는 타자의 의식을 예상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자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즉, 나는 나의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저 사람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며, 그를 통해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를 감각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자의식은 고립된 내면의 활동이 아니라, 타자의 응시와 반응을 통해 끊임없이 조정되고 반사되는 존재다. 내가 말실수를 했을 때 느끼는 민망함, 혹은 유머가 통했을 때의 만족감, 혹은 누군가의 무표정한 반응 앞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모두 자의식이 ‘나를 타인의 시선 안에서 바라보고 있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일상 대화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자기 인식이 타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구성되는 감각적-상호주관적 흐름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면서, 타자의 반응에 귀 기울이면서, 지금 이 순간의 나라는 존재가 세계 안에서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타인의 얼굴 속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4. 말은 나를 구성하고 또 낯설게 한다: 존재의 열림과 불안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세계-내-존재(Dasein)’로 설명하며, 우리는 언제나 세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존재한다고 말한다. 말은 바로 그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가장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매개다. 우리는 말을 통해 타자와 연결되며, 동시에 나 자신을 세계 안에 드러낸다. 그러나 말은 단순히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말을 꺼낸 이후에야 비로소 ‘나’가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말을 내뱉은 후 ‘내가 왜 저런 말을 했지?’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말이라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에게도 낯설게 드러난 자의식의 구조를 마주하게 된다. 말은 나를 구성하면서도 나를 초과하고, 말은 나를 드러내면서도 나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대화는 그래서 예측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감각되고 있는지를 세계에 열어 보이는 일종의 실존적 모험이다. 이 열림에는 늘 자기 노출의 불안, 정체성의 미묘한 흔들림이 동반되지만, 바로 그 틈새를 통해 우리는 더욱 명확하게 ‘나’를 감각할 수 있게 된다. 일상 대화에서 우리는 실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세계 안에서 나의 자리를 확인하고 조정하며, 존재로서의 ‘나’를 살아가는 수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말은 끝없이 흐르지만, 그 안에서 구성되는 자의식은 결코 단일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 말은 나를 구성하고, 나를 열어두며, 때때로 나를 새롭게 낯설게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대화를 나누며, 타인과 함께 나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