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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학

하이데거의 현상학: ‘존재’의 물음– 존재를 망각한 철학에 던지는 질문

1. 철학은 왜 ‘존재’를 물어야 하는가?

철학은 오래전부터 존재에 대해 질문해 왔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이 오래된 질문이 진정으로 제대로 물어진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이라는 대표작을 통해 서양 형이상학이 오랫동안 ‘존재자’에만 집중한 나머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을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여기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자’란, 세상에 실재하는 모든 것, 즉 ‘있는 것들’을 의미한다. 반면 ‘존재’란, 존재자가 ‘있다’고 말해질 수 있게 하는 존재함의 방식 그 자체, 즉 존재자의 존재 조건이다.

하이데거에게 철학의 과제는 존재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단순한 형이상학적 질문이 아닌, 실존적이고 존재론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물음은 단순히 학문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조건을 파악하고자 하는 절박한 요청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존재를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존재가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모순 속에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 망각(Seinsvergessenheit)의 상태를 철학의 위기로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적 접근으로써 현상학적 존재론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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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현상학: ‘존재’의 물음– 존재를 망각한 철학에 던지는 질문

2. 하이데거는 어떻게 현상학을 새롭게 정의했는가?

하이데거는 에드문트 후설의 제자였지만, 후설의 의식 중심 현상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후설이 ‘의식에 나타나는 현상’을 분석하며 지향성과 선험적 주체성을 강조하지만, 하이데거는 의식보다는 존재와 그 드러남의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후설의 ‘현상’을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것’, 즉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현상학을 존재의 진리를 여는 길로 전환한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더 이상 ‘의식 속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자가 존재하는 방식, 그리고 그 존재 방식이 인간 존재(‘현존재’, Dasein)에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되는가에 관한 탐구다. ‘현상’은 의식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경험되고 이해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하이데거는 이를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인간 존재는 본래 세계 안에 던져져 있고, 그 세계 속에서 존재자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는 현상학을 순수한 인식의 철학에서, 존재론적 탐구의 철학으로 확장했다. 하이데거에게 현상학은 더 이상 사물의 본질을 기술하는 방법론이 아니라, 존재가 어떻게 의미를 갖고 드러나는지를 여는 길, 즉 존재에 대한 길이다. 이 점에서 그는 ‘현상학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탐구’라고 정의하며, 현상학을 하나의 방식(method) 이상으로, 존재론적 사유의 태도로 자리매김한다.

3. ‘현존재’는 존재를 여는 열쇠다

하이데거의 존재 물음은 곧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존재는 인간 없이는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하이데거가 말하는 인간 존재는 단순한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존재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존재, 곧 현존재(Dasein)이다. 현존재는 독일어로 ‘여기 있음’, ‘존재함’을 뜻하는데, 하이데거는 이를 특별히 ‘존재에 대한 이해를 지닌 존재’로 정의한다.

현존재는 다른 존재자들과 달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 질문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열쇠다. 그렇기에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현존재 분석을 철학의 중심에 놓는다.
현존재는 본래 세계 안에 던져져(in der Welt geworfen) 있으며, 존재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형성해 간다. 이때 인간은 단지 관찰자나 사고하는 주체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사물과 상호작용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존재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세계-내-존재’라고 부르며, 존재에 대한 이해는 고립된 내면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고 본다.

또한 현존재는 시간적 존재다.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구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러한 존재의 시간성(Temporalität)은 하이데거 존재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존재를 고정된 본질로 보지 않고 항상 변화하고 열려 있는 과정으로 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4. 존재를 다시 묻는다는 것의 의미

하이데거의 철학은 단지 존재를 다시 묻는 것을 넘어서, ‘존재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으로 확장된다. 존재를 묻는다는 것은 곧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청하는 것이며,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그는 존재에 대한 사유를 통해 인간이 도구화되고 대상화된 현대 기술 사회에서 잃어버린 존재의 경험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드러남은 항상 은폐와 드러남의 긴장 속에 있다고 말한다. 존재는 항상 우리 앞에 펼쳐져 있지만, 동시에 일상성과 익숙함 속에 감춰진다. 그래서 존재를 묻는다는 것은 일상의 당연함을 낯설게 보고, 익숙한 사물과 행위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다시 열어보는 작업이다. 그는 이것을 ‘존재의 조명’이라고 표현하며, 존재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사유의 태도를 강조한다.

하이데거에게 현상학은 더 이상 단순히 주관과 대상, 인식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지를 묻는 근본적인 철학적 태도이다.
존재의 물음은 더 이상 외부 세계의 설명이 아니라, 자기 존재에 대한 책임과 질문,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의 철학은 단순히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삶의 근원에 다가가는 성찰의 방식이며, 오늘날에도 자기 자신을 성찰하려는 모든 이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